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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 밀란/2001-0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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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문서: AC 밀란
카를로 안첼로티의 부임과 밀란 제너레이션 2기가 시작된 시즌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이 1998-99시즌 깜짝 우승을 밀란에게 선물했지만, 2시즌 만에 추락하며 2000-01시즌 도중[2] 경질되었고, 2001-02시즌 나머지 기간 동안 체사레 말디니 감독대행 체제로 시즌을 마쳤다. 밀란은 암흑기를 끝내고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시즌 시작 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우선, 2001년 6월 18일, AC 밀란은 파티흐 테림 감독과 2년 계약을 체결하였다.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의 풀백[3] 과 공격형 미드필더[4] , 공격수[5] 를 이용한 3-4-3, 3-4-1-2 체제와는 달리, 리누스 미헬스의 토탈 풋볼과 유사한 전술을 사용하도록 4-3-1-2 체제로 밀란의 전술을 변형시켰다. 파티흐 테림 감독은 직전 팀에서 중용했던 피오렌티나에서 후이 코스타를 영입,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하였다. 기존에 있던 안드리 셰브첸코와 유벤투스로부터 막 영입되었던 필리포 인자기까지 더해 한층 공격적인 축구를 구사한다.
파티흐 테림 감독의 부임 이후, UEFA 컵 예선전에서 바테 보리소프와의 2연전, CSKA 소피아와의 2연전을 모두 승리하며 기세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세리에 A 순위 경쟁에서는 위태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파티흐 테림 감독의 전술이 지나치게 공격적이었기 때문이다. 파티흐 테림 감독은 AC 밀란을 매우 공격적인 팀으로 만들었지만, 이러면서 후방이 취약해졌고, 역습 전술을 들고 나오는 언더독 팀들[6] 에게 승점을 헌납하게 된다. 어느 정도로 공격적이었냐면, 당시 세리에 A 6R 기준 최하위 팀인 베네치아를 상대로 역습을 허용해 무승부를 기록하기도 했다.
2001년 10월 14일 세리에 A 6R 베네치아와 1:1 무승부를 거둔 이후 부회장이었던 아드리아노 갈리아니로부터 신임투표를 받았고, 바로 다음 라운드인 7R 인테르와의 더비전에서 4:2 대승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2001년 11월 5일 세리에 A 9R 토리노 원정에서 1:0 패배하며 파티흐 테림 감독은 경질되었다 #. 이후 AC 밀란은 곧바로 후임자를 물색, 2001년 11월 7일 유벤투스 감독직을 그만두고 휴식중이던 카를로 안첼로티를 감독으로 선임했다.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은 부임 직후부터 빠르게 팀을 수습했다. 기존의 4-3-1-2 체제를 이어받는 대신 공격적인 색채를 한층 벗겨냄과 동시에 수비적 기조를 기본으로 하는 중립적인 축구를 구사했다. 또한 플랜 B로 플랫 4-4-2를 사용하기도 했고, 3-4-1-2, 3-5-2나 4-2-3-1 등 다양한 전술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세리에 A 순위 경쟁 행보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결국 스쿠데토 경쟁을 가을부터 일찍이 포기하게 되었다. 대신 토너먼트 대회였던 코파 이탈리아와 UEFA 컵에서 좋은 성과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 두 대회도 코파 이탈리아는 4강에서 유벤투스에게 1차전, 2차전 득점 합계 2:3으로 밀리며 탈락했다. UEFA 컵에서는 4강에서 1차전 독일 원정에서 4:0 참패를 당했고, 2차전 홈에서 분투하여 3:1로 승리했지만, 득점 합계에서 5:3으로 도르트문트에게 밀려 탈락하게 되었다. 30년 만에 UEFA 컵 4강에 진출했지만, 우승은 달성하지 못한 AC 밀란 입장에서는 아쉬운 대회가 되었다.
시즌 말미까지 밀란은 세리에A에서 5위와 6위를 오가며 다음 시즌 UEFA 컵을 나가게 되는 것인가 했지만, 30R에서 맞닥트린 키에보 베로나와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위한 4위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을 보게 된다. 31R 유벤투스에게 0:1 패, 32R AS 로마에게 1:1 무승부를 하며 순위가 6위까지 쳐지며 2002-03시즌 챔피언스리그 진출은 물 건너가나 싶었지만, 33R 엘라스 베로나에게 2:1 승, 마지막 34R 레체에게 3:0 승을 거두게 되며 4위로 다음 시즌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 성공하게 되었다.
이 시즌 밀란의 이적시장이 활발했던 것은 밀란이 암흑기를 지나는 와중에 라이벌로 불리던 당시 유럽 탑클럽들이 괄목할만한 이적시장을 보냈던 것이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보인다. 98/99시즌 트레블을 달성한 이후 약간 부침을 격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루드 반니스텔로이, 로랑 블랑, 디에고 포를란을 영입했고, 레알 마드리드는 유벤투스로부터 지네딘 지단을 영입하며 갈락티코 정책에 박차를 가했다.
세리에 구단들의 보강도 이뤄졌는데, 유벤투스는 지단과 인자기를 매각한 돈으로 파르마로부터 잔루이지 부폰과 릴리앙 튀랑, 라치오로부터 파벨 네드베드와 마르셀로 살라스를 영입하며 팀의 내실을 탄탄히 다졌다. 라이벌인 인테르 역시 프란체스코 톨도, 세르지우 콘세이상, 크리스티아노 자네티와 유망주로 촉망받던 아드리아누를 영입하였다. 이렇게 대규모 이동이 일어나는 이적시장에서 돈을 아끼다가는 클럽이 더 퇴보할 수 있겠다는 구단 수뇌부의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AC 밀란은 파티흐 테림 감독을 선임함과 동시에 여름 이적시장이 개장하자 마자 활발한 행보를 보였다. 여름 이적 시장을 보내면서 밀란은 총 지출 1억 4000만 유로를 넘겼고, 순지출로 따져도 1억 1000만 유로를 넘겼다.
우선 노쇠화로 인한 기량 하락, 전술 변경 및 선수단 개혁의 일환으로 즈보니미르 보반, 레오나르두 아라우주, 올리버 비어호프를 자유계약으로 방출했다. 프란체스코 코코는 멘탈적인 문제로 파티흐 테림 감독에게 찍히면서 1경기 교체로 뛰고 곧바로 FC 바르셀로나로 임대를 떠났다. 타리보 웨스트의 경우 더비 카운티에서의 임대생활을 끝내고 AC 밀란으로 돌아왔으나, 자신의 포지션이었던 레프트백이 포화 상태[8] 였기 때문에 2001년 11월 1일, 결국 카이저슬라우테른으로 FA 이적했다. 지다는 위조 여권 스캔들에 연루되어 이탈리아 축구 연맹(FIGC)에 의해 정지 처분을 받고 코린치안스로 다시 임대되었다#.
이후 공격적인 영입으로 나간 선수들의 공백을 메웠다. 바로 직전 시즌 파티흐 테림 감독 밑에서 뛰었으며, 피오렌티나의 파산으로 인해 이적시장에 매물로 나왔던 후이 코스타를 4132만 유로에 영입했다. 동일 포지션에서 뛰던 즈보니미르 보반과 레오나르두 아라우주가 동시에 나가며, 한 시즌 내내 공격형 미드필더를 후이 코스타 한 명으로 버티기는 어렵다고 판단, 브레시아에서 솔솔히 활약하고 인테르로 돌아왔으나 여전히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던 안드레아 피를로를 백업으로 영입했다[9] .
또한 바로 직전 시즌에 데포르티보 알라베스 소속으로 활약하며, 결승전[10] 에서 두각을 드러냈던 하비 모레노와 코스민 콘트라를 각각 1600만 유로, 700만 유로에 영입하였다. 하비 모레노는 올리버 비어호프가 나간 이후 변변한 공격수가 안드리 셰브첸코 혼자였기 때문에 영입했다. 호세 마리가 지난 시즌 영입되었지만 활약이 미비했기 때문이다. 코스민 콘트라의 경우 밀란의 전문 우측풀백 자원이 토마스 헬베그 혼자였기 때문에 영입했다[11] .
코스민 콘트라를 영입했으나 여전히 우측풀백 자원이 빈약하다 느꼈고, 게다가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의 노쇠화로 인해 수비형 미드필더의 뎁스를 채워야 한다고 생각했던 AC 밀란은 아탈란타와 선수 + 돈을 얹어 트레이드를 감행했다. 아탈란타로부터 우측 풀백에 기용할 크리스티안 제노니와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할 마시모 도나티를 받고, 밀란은 잔니 코만디니, 루카 사우다티, 루이지 살라에 370만 유로를 얹어서 트레이드를 진행했다. 마시모 도나티는 밀란에 잔류했으나, 크리스티안 제노니는 곧바로 유벤투스로 재이적하였다.
이유는 바로 유벤투스에 다시 부임하게 된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개혁의 일환으로 내쳐진 필리포 인자기를 영입하기 위함이었다. 하비 모레노를 영입하기는 했으나, 리그 적응의 리스크가 있었기 때문에 여전히 밀란은 공격진이 부실하다 판단했고, 당시 세리에 A 정상급 공격수였던 필리포 인자기가 유벤투스로부터 내쳐지자 밀란은 곧바로 그를 영입했다. 두 구단의 거래 형식은 필리포 인자기 <=> 크리스티안 제노니 + 3615만 유로였다[12] .
이로서 밀란은 필리포 인자기 - 안드리 셰브첸코의 세리에 A 정상급 투 톱에 후이 코스타가 밑을 받치는 강력한 공격진을 갖추게 된다. 물론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두 선수의 광팬이었던 것도 이들의 영입에 한 몫 있다. 베를루스코니는 이 두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사재를 무려 7000만 유로를 털었다.
마지막으로 인테르가 좌측 윙자리에 안드레스 구글리엘민피에트로를 영입하고 싶어했고, 이에 AC 밀란은 크리스티안 브로키와의 트레이드를 제안했고, 이 딜이 성사되면서 두 선수는 각 구단으로 맞트레이드 되었다.
자세한 내용에 대한 내용은 AC 밀란/2001-02 시즌/리그 문서 참고하십시오.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의 부임 후 첫 경기였다.
- 하위 문서: AC 밀란/2001-02 시즌/리그
1. 시즌 요약[편집]
카를로 안첼로티의 부임과 밀란 제너레이션 2기가 시작된 시즌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이 1998-99시즌 깜짝 우승을 밀란에게 선물했지만, 2시즌 만에 추락하며 2000-01시즌 도중[2] 경질되었고, 2001-02시즌 나머지 기간 동안 체사레 말디니 감독대행 체제로 시즌을 마쳤다. 밀란은 암흑기를 끝내고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시즌 시작 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우선, 2001년 6월 18일, AC 밀란은 파티흐 테림 감독과 2년 계약을 체결하였다.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의 풀백[3] 과 공격형 미드필더[4] , 공격수[5] 를 이용한 3-4-3, 3-4-1-2 체제와는 달리, 리누스 미헬스의 토탈 풋볼과 유사한 전술을 사용하도록 4-3-1-2 체제로 밀란의 전술을 변형시켰다. 파티흐 테림 감독은 직전 팀에서 중용했던 피오렌티나에서 후이 코스타를 영입,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하였다. 기존에 있던 안드리 셰브첸코와 유벤투스로부터 막 영입되었던 필리포 인자기까지 더해 한층 공격적인 축구를 구사한다.
파티흐 테림 감독의 부임 이후, UEFA 컵 예선전에서 바테 보리소프와의 2연전, CSKA 소피아와의 2연전을 모두 승리하며 기세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세리에 A 순위 경쟁에서는 위태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파티흐 테림 감독의 전술이 지나치게 공격적이었기 때문이다. 파티흐 테림 감독은 AC 밀란을 매우 공격적인 팀으로 만들었지만, 이러면서 후방이 취약해졌고, 역습 전술을 들고 나오는 언더독 팀들[6] 에게 승점을 헌납하게 된다. 어느 정도로 공격적이었냐면, 당시 세리에 A 6R 기준 최하위 팀인 베네치아를 상대로 역습을 허용해 무승부를 기록하기도 했다.
2001년 10월 14일 세리에 A 6R 베네치아와 1:1 무승부를 거둔 이후 부회장이었던 아드리아노 갈리아니로부터 신임투표를 받았고, 바로 다음 라운드인 7R 인테르와의 더비전에서 4:2 대승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2001년 11월 5일 세리에 A 9R 토리노 원정에서 1:0 패배하며 파티흐 테림 감독은 경질되었다 #. 이후 AC 밀란은 곧바로 후임자를 물색, 2001년 11월 7일 유벤투스 감독직을 그만두고 휴식중이던 카를로 안첼로티를 감독으로 선임했다.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은 부임 직후부터 빠르게 팀을 수습했다. 기존의 4-3-1-2 체제를 이어받는 대신 공격적인 색채를 한층 벗겨냄과 동시에 수비적 기조를 기본으로 하는 중립적인 축구를 구사했다. 또한 플랜 B로 플랫 4-4-2를 사용하기도 했고, 3-4-1-2, 3-5-2나 4-2-3-1 등 다양한 전술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세리에 A 순위 경쟁 행보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결국 스쿠데토 경쟁을 가을부터 일찍이 포기하게 되었다. 대신 토너먼트 대회였던 코파 이탈리아와 UEFA 컵에서 좋은 성과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 두 대회도 코파 이탈리아는 4강에서 유벤투스에게 1차전, 2차전 득점 합계 2:3으로 밀리며 탈락했다. UEFA 컵에서는 4강에서 1차전 독일 원정에서 4:0 참패를 당했고, 2차전 홈에서 분투하여 3:1로 승리했지만, 득점 합계에서 5:3으로 도르트문트에게 밀려 탈락하게 되었다. 30년 만에 UEFA 컵 4강에 진출했지만, 우승은 달성하지 못한 AC 밀란 입장에서는 아쉬운 대회가 되었다.
시즌 말미까지 밀란은 세리에A에서 5위와 6위를 오가며 다음 시즌 UEFA 컵을 나가게 되는 것인가 했지만, 30R에서 맞닥트린 키에보 베로나와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위한 4위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을 보게 된다. 31R 유벤투스에게 0:1 패, 32R AS 로마에게 1:1 무승부를 하며 순위가 6위까지 쳐지며 2002-03시즌 챔피언스리그 진출은 물 건너가나 싶었지만, 33R 엘라스 베로나에게 2:1 승, 마지막 34R 레체에게 3:0 승을 거두게 되며 4위로 다음 시즌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 성공하게 되었다.
2. 선수단[편집]
3. 감독 및 코칭스태프[편집]
4. 이적 시장[편집]
이 시즌 밀란의 이적시장이 활발했던 것은 밀란이 암흑기를 지나는 와중에 라이벌로 불리던 당시 유럽 탑클럽들이 괄목할만한 이적시장을 보냈던 것이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보인다. 98/99시즌 트레블을 달성한 이후 약간 부침을 격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루드 반니스텔로이, 로랑 블랑, 디에고 포를란을 영입했고, 레알 마드리드는 유벤투스로부터 지네딘 지단을 영입하며 갈락티코 정책에 박차를 가했다.
세리에 구단들의 보강도 이뤄졌는데, 유벤투스는 지단과 인자기를 매각한 돈으로 파르마로부터 잔루이지 부폰과 릴리앙 튀랑, 라치오로부터 파벨 네드베드와 마르셀로 살라스를 영입하며 팀의 내실을 탄탄히 다졌다. 라이벌인 인테르 역시 프란체스코 톨도, 세르지우 콘세이상, 크리스티아노 자네티와 유망주로 촉망받던 아드리아누를 영입하였다. 이렇게 대규모 이동이 일어나는 이적시장에서 돈을 아끼다가는 클럽이 더 퇴보할 수 있겠다는 구단 수뇌부의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4.1. 여름 이적 시장[편집]
AC 밀란은 파티흐 테림 감독을 선임함과 동시에 여름 이적시장이 개장하자 마자 활발한 행보를 보였다. 여름 이적 시장을 보내면서 밀란은 총 지출 1억 4000만 유로를 넘겼고, 순지출로 따져도 1억 1000만 유로를 넘겼다.
우선 노쇠화로 인한 기량 하락, 전술 변경 및 선수단 개혁의 일환으로 즈보니미르 보반, 레오나르두 아라우주, 올리버 비어호프를 자유계약으로 방출했다. 프란체스코 코코는 멘탈적인 문제로 파티흐 테림 감독에게 찍히면서 1경기 교체로 뛰고 곧바로 FC 바르셀로나로 임대를 떠났다. 타리보 웨스트의 경우 더비 카운티에서의 임대생활을 끝내고 AC 밀란으로 돌아왔으나, 자신의 포지션이었던 레프트백이 포화 상태[8] 였기 때문에 2001년 11월 1일, 결국 카이저슬라우테른으로 FA 이적했다. 지다는 위조 여권 스캔들에 연루되어 이탈리아 축구 연맹(FIGC)에 의해 정지 처분을 받고 코린치안스로 다시 임대되었다#.
이후 공격적인 영입으로 나간 선수들의 공백을 메웠다. 바로 직전 시즌 파티흐 테림 감독 밑에서 뛰었으며, 피오렌티나의 파산으로 인해 이적시장에 매물로 나왔던 후이 코스타를 4132만 유로에 영입했다. 동일 포지션에서 뛰던 즈보니미르 보반과 레오나르두 아라우주가 동시에 나가며, 한 시즌 내내 공격형 미드필더를 후이 코스타 한 명으로 버티기는 어렵다고 판단, 브레시아에서 솔솔히 활약하고 인테르로 돌아왔으나 여전히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던 안드레아 피를로를 백업으로 영입했다[9] .
또한 바로 직전 시즌에 데포르티보 알라베스 소속으로 활약하며, 결승전[10] 에서 두각을 드러냈던 하비 모레노와 코스민 콘트라를 각각 1600만 유로, 700만 유로에 영입하였다. 하비 모레노는 올리버 비어호프가 나간 이후 변변한 공격수가 안드리 셰브첸코 혼자였기 때문에 영입했다. 호세 마리가 지난 시즌 영입되었지만 활약이 미비했기 때문이다. 코스민 콘트라의 경우 밀란의 전문 우측풀백 자원이 토마스 헬베그 혼자였기 때문에 영입했다[11] .
코스민 콘트라를 영입했으나 여전히 우측풀백 자원이 빈약하다 느꼈고, 게다가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의 노쇠화로 인해 수비형 미드필더의 뎁스를 채워야 한다고 생각했던 AC 밀란은 아탈란타와 선수 + 돈을 얹어 트레이드를 감행했다. 아탈란타로부터 우측 풀백에 기용할 크리스티안 제노니와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할 마시모 도나티를 받고, 밀란은 잔니 코만디니, 루카 사우다티, 루이지 살라에 370만 유로를 얹어서 트레이드를 진행했다. 마시모 도나티는 밀란에 잔류했으나, 크리스티안 제노니는 곧바로 유벤투스로 재이적하였다.
이유는 바로 유벤투스에 다시 부임하게 된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개혁의 일환으로 내쳐진 필리포 인자기를 영입하기 위함이었다. 하비 모레노를 영입하기는 했으나, 리그 적응의 리스크가 있었기 때문에 여전히 밀란은 공격진이 부실하다 판단했고, 당시 세리에 A 정상급 공격수였던 필리포 인자기가 유벤투스로부터 내쳐지자 밀란은 곧바로 그를 영입했다. 두 구단의 거래 형식은 필리포 인자기 <=> 크리스티안 제노니 + 3615만 유로였다[12] .
이로서 밀란은 필리포 인자기 - 안드리 셰브첸코의 세리에 A 정상급 투 톱에 후이 코스타가 밑을 받치는 강력한 공격진을 갖추게 된다. 물론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두 선수의 광팬이었던 것도 이들의 영입에 한 몫 있다. 베를루스코니는 이 두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사재를 무려 7000만 유로를 털었다.
마지막으로 인테르가 좌측 윙자리에 안드레스 구글리엘민피에트로를 영입하고 싶어했고, 이에 AC 밀란은 크리스티안 브로키와의 트레이드를 제안했고, 이 딜이 성사되면서 두 선수는 각 구단으로 맞트레이드 되었다.
4.1.1. 영입[편집]
4.1.2. 방출[편집]
4.2. 겨울 이적 시장[편집]
4.2.1. 영입[편집]
4.2.2. 방출[편집]
5. 세리에 A[편집]
자세한 내용에 대한 내용은 AC 밀란/2001-02 시즌/리그 문서 참고하십시오.
6. UEFA 컵[편집]
6.1. 예선전[편집]
6.1.1. 1라운드 VS 바테 보리소프[편집]
6.1.1.1. 1차전 (원정, 0:2 승)[편집]
6.1.1.2. 2차전 (홈, 4:0 승)[편집]
6.1.2. 2라운드 VS CSKA 소피아[편집]
6.1.2.1. 1차전 (홈, 2:0 승)[편집]
6.1.2.2. 2차전 (원정, 0:1 승)[편집]
6.1.3. 3라운드 VS 스포르팅 CP[편집]
6.1.3.1. 1차전 (홈, 2:0 승)[편집]
6.1.3.2. 2차전 (원정, 1:1 무)[편집]
6.2. 토너먼트[편집]
6.2.1. 16강 VS 로다 JC[편집]
6.2.1.1. 1차전 (원정, 0:1 승)[편집]
6.2.1.2. 2차전 (홈, 0:1 패, 승부차기 3:2 승)[편집]
6.2.2. 8강 VS 하포엘 텔아비브[편집]
6.2.2.1. 1차전 (원정, 1:0 패)[편집]
6.2.2.2. 2차전 (홈, 2:0 승)[편집]
6.2.3. 4강 VS 보루시아 도르트문트[편집]
6.2.3.1. 1차전 (원정, 4:0 패)[편집]
6.2.3.2. 2차전 (홈, 3:1 승)[편집]
7. 코파 이탈리아[편집]
7.1. 16강 VS 페루자[편집]
7.1.1. 1차전 (홈, 3:0 승)[편집]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의 부임 후 첫 경기였다.
7.1.2. 2차전 (원정, 0:0 무)[편집]
7.2. 8강 VS 라치오[편집]
7.2.1. 1차전 (홈, 2:1 승)[편집]
7.2.2. 2차전 (원정, 2:3 승)[편집]
7.3. 4강 VS 유벤투스[편집]
7.3.1. 1차전 (홈, 1:2 패)[편집]
7.3.2. 2차전 (원정, 1:1 무)[편집]
8. 출처[편집]
[1]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동생이다.[2] 세리에 A 기준 2000-01시즌 세리에 A 22라운드까지 역임했다.[3] 토마스 헬베그, 세르지뉴, 크리스티안 치게, 안드레스 구글리엘민피에트로, 프란체스코 코코[4] 즈보니미르 보반, 레오나르두 아라우주[5] 올리버 비어호프, 안드리 셰브첸코, 조지 웨아[6] 브레시아, 아탈란타, 베네치아, 볼로냐에게는 무승부를, 페루자와 토리노에게는 패배하였다.[7] 두 선수의 출장 경기수는 호세 샤모트가 32경기,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가 31경기이며, 선발 출장 횟수는 호세 샤모트가 30경기,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가 29경기로 역시 한 경기 차이이다.[8] 이 시즌 파올로 말디니의 무릎 부상, 프란체스코 코코의 임대로 인한 공백이 있었으므로 뛸 수도 있었지만, 해당 포지션에는 이미 카카베르 칼라제라는 걸출한 자원이 있었고, 여기에 여차하면 미드필더 포지션에서 뛰었지만 세르지뉴도 이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으며, 수비수 전 포지션을 볼 수 있었던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와 호세 샤모트의 존재가 있었기에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다.[9] 피를로의 본 포지션은 원래 공격형 미드필더였고,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 역시 시즌 중반까지는 그렇게 기용했다.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레지스타 피를로는 이 시즌 후반기부터 시작되었고, 본격적으로는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이 밀란에 부임한 2번째 시즌인 2002-03시즌부터였다.[10] 당시 결승전 상대는 리버풀이었으며, 데포르티포 알라베스는 준우승을 했다.[11] 헬베그 말고 그 자리에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 호세 샤모트, 호케 주니오르까지 뛸 수는 있으나 세 선수 모두 주 포지션은 센터백이다.[12] 당시 언론사 별로 이적 금액에 대해 상이한 보도를 내놓았으나 유벤투스는 회계 장부상 인자기의 이적으로 3112만 유로의 순이익을 냈다고 밝혔다.#해당 PDF 61p에 기재되어 있다.[C.1] A B 필리포 인자기 <=> 크리스티안 제노니 + €36.15m #, #[C.2] A B C D E 마시모 도나티 + 크리스티안 제노니 <=> 잔니 코만디니 + 루카 사우다티 + 루이지 살라 + €3.7m #1,#2[C.3] A B 맞트레이드 #[A] A B C 임대료[C.4] A B 맞트레이드 #